고성 밖 대로

여행을 마치고 나면, 여행 당시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은 너무나 소소해서 어떤 사진에도 담겨있지 않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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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고성까지 나있는 큰 도로를 걸어가면서 동생과 대화하던 순간들이.
당시엔 당시 나름의 고민과 번뇌가 있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만큼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도 없었다는 것을.

고성 밖 대로

중국

하이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Hanmei와 중국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은 워낙 크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모든 것을 컨트롤 하기 어렵고 exhaustive한 법규를 만들기도 어렵다. 따라서 많은 부분 지방에 권한을 위임한다. 중국은 tradition에 의해 운영된다는 느낌이 든다. 즉 국가가 제시하는 표준적인 생활방식에 따라서 살기 보단 지역마다 전해 내려오는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컨트롤의 이유로 정부는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Hanmei가 대학에서 영어교육과를 마치고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본인이 어렸을 적 사용한 교과서 그대로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더란다. 학생들은 암기 위주의 수업을 하고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된다.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와 멀어지게 하는 데에 정부가 일조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사람들은 책을 많이 안 읽는다고 한다. 주위에 서점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서점을 본 기억이 없다. 이런 것들은 결국 사람들을 현실 순응적으로 만들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도록 한다. Hanmei가 사회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하면 주위 사람들은 “네가 영어를 배우더니 서양화(Westernized) 되었구나.”라며 비웃는다고 한다.

Hanmei는 또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했다. 이 부분이 나에겐 매우 흥미로웠는데, 내가 평소에 자주 생각하는 문제이기도 했고 일상 대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주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도 있고 다른 불쌍한 사람들도 많은데 콕 집어서 정신질환자라니. 요지인즉슨, 가족 중에 이런 사람이 있는 경우 모든 부담은 전적으로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즉, 당사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개인주의적 의식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부양해주던 가족이 죽으면 내버려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거리엔 노숙자와 정신질환자들이 방황하고 다닌다. 왜 한국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많이 말하지 않는 걸까? 그건 한국이 그만큼 복지가 잘 되어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앞서 언급한대로 중국이 tradition 기반 사회라서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걸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세 모녀 사건“처럼 음지에 방치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버스가 리장 시내로 들어오는데 Hanmei가 툭툭 치면서 창문 밖 누군가를 가리킨다. “Hey, homeless.” 어떤 남자가 중앙선에 쭈그리고 앉아 똥을 싸면서 한 손으로 그걸 받고 있다. 누구나 예외없이 똑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저 기도가 나올 뿐이다.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