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versation with Sis. Yang

어제 아침에 연구실에 갔다가 기분이 상해서 주말에 서울에 오기로 결심을 했다. 가뜩이나 요즘 연구는 연구대로 진로는 진로대로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은데 급 우울해졌다.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구나 공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겠고 의욕도 없어졌다. 형신이한테 나를 motivate 할 수 있는 말을 준비해놓으라고 말하고선 밤 늦게 형신이 집으로 직행했다. 형신이는 할 일이 많았는지 방에서 자기 할 일 하다가 자버렸고, 난 새벽 3시까지 양 자매님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내 고민은 이 분야의 연구라는 길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굉장한 업적을 남기지 않는 한 아둥바둥 열심히 연구를 해봤자 그 공헌도가 매우 미비할 것이며, 사람들은 왜 저런 쓸데없는 것들을 할까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연구 자체를 너무 좋아해서 미치지 않는 이상 이것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때에, 그래도 학생이기 때문에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면서 노력해야하는 내 모습이 안타깝달까… 현재 전혀 다른 방향의 진로도 생각은 하고 있지만 확실한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장 현명한 방법은 일단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꾸준히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보는 것이다. 단, 문제는 요즘 의욕도 부족하고 뭔가 모티베이션을 가지고 싶었다.

자매님께선 먼저 나를 격려해주셨다. 세상에는 너희처럼 하고 싶어도 능력이 못 따라주는 사람이 많은데, 일단 너희는 능력을 받았으니 어떻게든 하긴 하면 이루는 것이 있지 않겠느냐. 자매님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셨다. “훌륭한 문학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연세대학교 아니면 다른 곳은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그러기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대학을 포기하고 직장에서 일을 해야했다. 몇 년 그렇게 일을 하다가 다시 공부할 생각을 하려고 보니 자신이 참 별볼일 없는 존재더라. 고향에서는 자기가 매우 잘난 줄 알았는데 서울에 와보니 우물 안 개구리였더라. 차라리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학을 일단 들어갔더라면 그런 무기력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텐데.” 그냥 이 말이 격려가 되었다. 대학원 2년이면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이 기간을 놓치면 잃게 되는 것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가능성이 희박한 길을 가려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만 하면 또 그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는 있을 테니까.

자매님은 항상 열심히 생각하고 의미를 찾아야만 실행에 옮기는 타입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생각을 열심히 하면 점점 각도가 벌어지다가 결국에는 360도를 다 돌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고 하셨다. 이 과정은 헛된 과정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통해 체험한 주님의 말씀이 남아있게 된다고 하셨다. 즉, 똑같이 원점에 있다고 하더라도 움직이지 않고 있던 사람과 한 바퀴를 돌고 다시 돌아온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은 나선형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위에서 보면 계속 똑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바퀴를 돌면 이전에 있던 자리보다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빙글빙글 돌면서 조금씩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믿음의 문을 열면 목적지까지 곧게 난 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 걷다 보면 또 다시 새로운 문이 나오고 이 문을 열고 길을 걷다보면 또 문이 나오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생각이 많은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과정을 통해 주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인생에 항상 주님이 계시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연구실에서 공부를 할 때에도 주님이 계시게 해야한다. 교회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서 왜 주님이 집회 장소에만 있도록 제한시키는가? 주님이 연구실에 계시면 안 되는가? 내가 가는 곳마다 주님이 계시도록 하면 안 되는가? 일상과 교회 생활이 명확히 분리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 말씀이 나를 비추었다. 나는 주님이 내 일상적인 생활(연구, 공부 등등)에 개입하시도록 얼마나 허락해드리는가? 절대로 건들지 못하도록 나를 꽉 닫아 놓지는 않는가? 공부랑 주님을 얻는 생활은 시간이라는 한정된 리소스를 다투는 직렬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은 서로 독립적인 병렬 관계에 있다. 그것이 믿음이고 내가 여름 방학 때 배운 공과이지 않은가?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봤자 내 능력의 한계에 갇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주님의 방식은 내 한계 위에 쏟아부어주시는 것이다. 결국 나는 그렇게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먼저 그 분의 나라와 그 분의 의를 추구하면 그 앞에서 말한 것들–무엇을 입을까 먹을까하는 삶의 문제들–은 주님이 알아서 더해주신다. 너무 자주 들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무미건조하게 넘기던 말씀이지만, 실제 이는 인생을 사는 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어마어마한 약속이다.

역시 사람은 말을 해야 살 수 있다. 그동안 대전에서 이런 오픈된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번 계기로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힘을 조금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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