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21살 여름방학 때, 그 때는 25살이 되고 싶었다. 25살이면 정말 다 자란 청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고, 과연 나는 무슨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을까 여자친구와 어떤 데이트를 하고 있을까 기대했다. 어려서부터 나보다 두 살 이상 많은 형들은 완전히 어른 같이 느껴지곤 했다. 25살이라는 건 내게 좀더 특별한 느낌이었다. “대학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로운 이미지와 아름다움. 어렸을 적 옆집에 사는 대학생 누나가 우리집에 찾아와 존슨즈 베이비 로션 세트를 선물로 주었을 때, ‘아, 대학생은 학교 근처에서 이런 비싸고 좋은 물건도 혼자서 살 줄 아는 사람이구나’ 느꼈다. 아마도 “원탁의 삼총사”를 보면서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 발리언트가 25살 쯤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지도… 대학생은 다들 키가 180은 되는 줄 알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누군가를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25살이 내 인생의 황금기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하는 때라고 생각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5살이 되었다. 난 멋진 옷을 입고 회사에 출퇴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지도 않고 기대한만큼 키가 크지도 않다.

오늘은 유난히도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러모로 도와준 사람들은 나에게 고마움을 느낄까 궁금하기도 하고. 유재석이나 김남길은 무명시절 단역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서 지금의 훌륭한 실력과 위치를 가질 수 있었다고들 하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자질구레한 혹은 시시한 임무가 계속 주어질 때, 속으로 ‘저 사람들은 나의 능력을 몰라’라고 얼마나 많이 외치고 원망했을까. 뭐, 정말 능력이 있든 없든. 그것을 인내하고 이겨내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심난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배나사에 가서 준혁이랑 창조랑 한바탕 씨름하고 돌아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놈들은 말을 참 드럽게 안 듣는다.

25살

One thought on “25살

  1. 사람들이 아이들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부모들이 자식을 보면서 기대하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25세, 30세, 40세에는 이런 모습이 되겟지, 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지만 정작 그 나이가 되면 자기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닌 경우가 많을거에요. 물론 그 모습이 자기가 상상하던 모습보다 더 나은 경우도 있겟지요. 제 경우에는 기대에 못 미치지도, 넘치지도 않지만 상상하던 모습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10대, 20대의 청년들을 보면서 이들이 내 나이쯤 되면 내가 이룬것보다 더 많은걸 이루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자신이 못다이룬 꿈을 또 꾸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그런 막연한 상상을 하는 것보다는 자신과 다음 세대가 각자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쉽게 되지는 않네요. 10년 후 우리 랩 학생들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뿌린만큼 거두겟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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