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통해 철이 든다는 것

계급 사회에서 잘 행동하는 것과 철이 드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군대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계급 혹은 연배가 높은 사람에게 복종하고 그들의 갈굼에도 인내하는 것을 가지고 철이 들었다 안 들었다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높은 사람에게 “감히” 말대꾸하는 사람에게 “넌 아직 철이 없어. 군대를 좀 다녀와야 정신을 차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군대에서 갈굼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아야만 했던 고통에 대해 정당화하고 정신적으로 보상 받기 위한 행동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런 풍토가 지금의 우리나라 문화를 만들었고, “권위 = 남을 조종할 수 있는 권리”라는 등식을 강요함으로써 공동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권위를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권위, 선생의 권위, 상사의 권위… 부모의 권위는 말할 필요도 없고, 선생과 상사는 개인 혹은 조직의 발전을 위해 대표로 세워졌고 조직에 속해있다는 것은 그 조직의 룰에 따르겠다는 암묵적인 동의임을 고려했을 때 존중 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권위가 절대 복종을 의미하지는 않으므로,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마음대로 부려서는 안 되며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자신의 의사를 당당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진상은 권위가 아닌 것을 권위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나이가 많은 것을 권위라고 생각한다든지 경험이 많은 것을 권위라고 생각한다든지 권위의 범위를 파악 못하는 것 (예를 들어, 대그룹의 회장은 그 그룹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그 권위가 그 그룹과는 전혀 상관 없는 나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다시 군대에 대해서 말하자면, 난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을 존경하며 군대를 통해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인내력이 생기고, 체력이 늘었다면 정말로 철이 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군대를 통해 철이 든다는 것

수학 교육을 시켜야 하는가

가장 좋은 케이스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로 하여금 흥미를 갖도록 이끌어주는 것이겠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 같다. 이게 안 되는 이상,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억지로 수학을 밀어 넣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나 가르침을 당하는 사람이나 서로에게 고역이다. 왜 좋아하는 것을 놔두고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켜야 하는가.

수학 교육을 시켜야 하는가

E(XY) & Cov(X,Y)

x ~ Dirichlet(a) 에서 E(xi * xj) 를 어떻게 계산해야할지 감이 안 잡혀서 Topic-Models 메일링 리스트에 질문.

누군가 Cov(X,Y) = E(XY) – E(X)E(Y) 를 사용해보라고 했는데, 아차 싶었다.

분명 확률 통계 수업 시간에도 여러 번 봤던 식인데 막상 필요할 때 생각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아직 covariance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네.

E(XY) & Cov(X,Y)

원천기술

보고서는 모바일하버사업 역시 짧은 기간 내 추진 계획이 수립되면서 과제의 단기목표 및 내용이 크게 변경됐으며, 원천기술개발이 극히 어려운 과제를 대학이 주도해 단시간 내에 상용화하겠다는 계획 자체가 처음부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Link]

머릿속에서 뭔가 감은 잡히는데 명확히 표현할 수 없었던 느낌을 표현해주는 단어. 원천기술.

두 종류의 연구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나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기술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결합시킨 연구이다. 전자는 이론적인 깊이가 깊지만 구체성이나 정밀함이 떨어지는 반면, 후자는 이론적인 깊이는 얕지만 구체성이나 정밀함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천기술이라 하면 내가 자주 사용하는 LDA가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파격력과 적용성이 대단하지만 end-user에게 바로 적용시켜 사용할 만큼 구체적이거나 세밀하지 않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라 하면 기존의 기술들을 사용하여 재미있고 유익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예를 들어 최근 Twitter 연구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들은 기존의 기술들이 매우 구체적인 도메인으로 customized 되었기 때문에 end-user들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연구 자체에서 뛰어난 파급력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두 종류의 연구가 서로 exclusive한 건 아니다. 원천기술 연구라 해도 아이디어가 필요하며, 아이디어성 연구라 해도 탄탄한 이론이 뒷받침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전자에서 필요로 하는 아이디어는 후자에서 필요로 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아이디어이며, 이론 역시 그 깊이나 종류에서 둘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를 말할 수는 없는 것 같고 연구하는 사람의 적성과 성격에 따라서 다르지 않을까 싶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 전자가 더 적성에 맞을 수도, 후자가 더 적성에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원천기술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단상

내가 처음으로 열광했던 게임은 Dune II, 그 후로 즐겨한 게임들은 삼국지 시리즈와 영걸전, 그리고 포트리스.

주위에서 많이 했지만 나는 별로 하기 싫어했던 게임은 페르시아의 왕자, 스타크래프트, 그리고 스페셔 포스 등의 총 쏘는 게임.

어떤 게임을 좋아하고 싫어하는가는 내 성격을 잘 반영해주는 듯하다. 요즘 스타크래프트 2 베타가 나오면서, 스타크래프트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써보려고 한다.

스타크래프트를 싫어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이 게임을 하면 급우울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 하다가 그냥 꺼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단 구경하는 것은 좋아한다. 이것 말고 스타크래프트의 다음과 같은 특성들 때문에 싫어했다.

1. 서둘러서 전략을 짜내고 순발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

내가 좋아했던 대부분의 게임들은 턴 방식으로 진행 되고, 나의 턴이 되면 나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 어떻게 하면 적을 완벽하게 이길 수 있을까 충분히 전략을 구상할 수 있고 느긋하게 게임을 할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턴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적을 분석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고 많은 때 직감의 의존해서 진행하므로 최고의 시나리오를 내가 직접 만들 수가 없다. 또한 나는 decision tree적인 사고 방식이 강해서 이를 충분히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하는 게임은 싫어한다.

2. 패배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가 없다.

스타크래프트라든지 총 싸움 게임을 하다보면 어찌어찌하다 죽는 게 한 순간이다. 내가 패배하겠구나 하는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갖기도 전에 게임이 끝나 버린다. 갑자기 적이 게릴라 공격을 펼쳐서 본진이 초토화 되려고 할 때, 그리고 나는 어찌해야하는지 도무지 감도 안 잡히고 손을 쓸 수가 없을 때, 그 때 받는 충격이 좀 심하다.

3. 많은 패배를 통해 훈련해야 한다.

따라서 패배를 통해 실력을 연마해야하는 게임은 별로다. 훈련을 거쳐 전문가가 되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대단할지 모르겠지만 아직 그 정도 레벨에 이를 정도로 훈련을 했던 게임이 없다.

4. 멀티 태스킹을 해야 한다.

멀티 태스킹을 하는 것도 피곤하다. 한 번에 하나씩 sequential한 접근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전투 중에 유닛 컨트롤 하랴 본진 신경 쓰랴 병사 더 뽑아내랴, 너무 힘들다.

이는 내 평소 성격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난 매사에 완벽주의이고, 실패를 두려워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으면 시작을 하지 않으려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대부분 decision tree 방식이다. 나쁜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다. 준희 말처럼 이런 게임도 할 필요가 있다는 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스타크래프트가 내 부족한 점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단상

스승의 날

인연이라는 것은 참 재미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도 있으니까. 거창하게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없다. 대신 선생님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분은 있다. 중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남들보다 좀 똑똑한 편이라든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넘어갔을 때 한 번 치른 시험 말고는 시험이란 걸 본 적이 없었고 주위에 시를 잘 쓴다든지 역사에 빠싹하다든지 그런 재능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예배장소 가는 길에 서울외고가 있었는데 창문마다 에어컨 실외기가 달려 있는게 너무 신기하고 부러워서 감탄을 하면 아빠께서는 “저긴 똑똑한 학생들만 갈 수 있는 데야”라고 하시고 나는 “아 아무나 갈 수 있는 데가 아니구나. 나 같은 사람이 가는 데가 아니네” 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교내 수학경시대회가 열린다길래 그냥 그런 데 안 나가면 아빠가 실망하실 것 같아서 신청하고 시험을 보게되었다. (난 대회 같은 거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 며칠 후에 수학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부르셨다. 그 때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대충 “네가 막 그렇게 잘 한 건 아닌데 1학년 치고는 잘해서 장려상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여튼 그 이후로 나는 나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고 수학을 깊게 공부하기 시작했고 과고를 거쳐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그 선생님께서 내 공부를 열심히 도와주신 건 아니다. 단지 시작하는 기회를 열어 주셨을 뿐. 그래도 나에게는 매우 고마운 분이시다. 4년 전에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선생님 메일 주소를 찾아내고 연락을 했다. 그 때 쓴 메일을 지금 다시 읽어보니까 손발이 오글오글. 수학 교육을 위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신 것 같다. 선생님으로서의 임무를 훌륭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승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