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dn Cello Concerto No.1 in C Major

Haydn Cello Concerto No.1 in C Major Mvt. 3
by Han-Na Chang and Philharmonic Sinfonietta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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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ydn Cello Concerto No.1 in C Major

오케스트라와 교회

서울시 관현악단이 내는 소리는 역시 좋더라. 그동안 오케스트라 연주를 직접 들은 것은 주로 학교 공연에서였다. 아마추어라 그런지 소리가 좀 깨끗하지 못하고 하나라는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프로들은 역시 달랐다. 좋은 오케스트라의 조건은 무엇일까, 좋은 솔로 연주자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오케스트라는 개개인이 뛰어난 음악적 해석 능력을 가질 필요가 없다. 설사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지휘자의 지휘 앞에서 무시되어져야 한다. 교회에서 “기능을 발휘한다”는 말을 종종 쓰는데 그것은 내가 남보다 잘하는 나의 장기를 발휘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케스트라에서 발휘되어서 좋은 기능은 전적으로 팀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 뿐이다. 재능이 많은 사람은 교회생활이 더 어렵다. 왜냐하면 더 많이 제한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량이 뛰어난 음악가가 오케스트라 내에서 얼마나 본인의 특기와 능력을 제한 시켜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능력이 완전히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단원은 자신의 악기를 자유자제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맑은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박자감이 있어야한다. 음악적 감각도 어느 정도 있어야 지휘자의 요구에 맞게 연주를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최소한의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내가 남보다 잘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소리를 내고 짐이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기능은 완벽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지체의 기능은 남이 하기 어려운 것을 잘할 때 존경하고 칭찬해주는 개념이 아니다. 단원이 가지면 좋은 “기능”이란 전적으로 팀 전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악적 역량이 뛰어난 단원이 있다고 해보자. 세상에서는 이 단원에게 찬사를 보낼 것이고 오케스트라에 있기 아까운 인물이라 하겠지만 오케스트라에서는 이 단원의 역량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차라리 지휘자의 입장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바라본다고 생각해보자. 지휘자는 어떤 단원을 마음에 들어할 것인가.

오케스트라와 교회

Joe Hisaishi Asia Tour in Seoul

히사이시조의 지브리 스튜디오 25주년 콘서트(Studio Ghibli 25th Anniversary Concert) DVD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서 내한공연 하기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알게된 공연.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이 공연은 히사이시조의 미니멀 음악과 사운드트랙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운드트랙이 아닌 곡들 중에는 아는 곡이 없었고 인터넷에서 찾기도 어려웠지만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곡들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로 티켓 오픈하자마자 재빠르게 구매했다.

먼저 공연에 대한 전체적인 평을 하자면 좌석이 심하게 문제였다. A석을 88,000원에 구입했는데 무려 3층이었고 앞에서 두 번째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너무 멀어 웅장한 사운드를 들을 수 없었다. 뮤직 샤워를 기대했는데 사운드 속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고 그냥 무대 위에서 나는 소리를 멀찍이서 듣는 느낌이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이 정도 사운드는 좀 심한 듯했다. 차라리 DVD가 사운드는 더 나았다. 앞으로 콘서트에 가서 들으려면 최소 2층 좌석은 끊어야 할 것 같다. 좋아하는 곡들이 많이 나왔고 이 곡들은 예전부터 많이 듣던 곡들이어서 더 할 말이 많지는 않다. 가장 기대했던 태왕사신기를 연주하지 않은 건 실망스러웠다. 전날 공연에서는 했다던데.

공연 시작 때 히사이시조가 말하기를 공연 전반부에서는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미니멀 음악을 연주할 것인데 이 음악은 아마 생소하고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미니멀 음악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각 파트는 단순한 chunk를 계속 반복하고 이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이 된다. 사실 어우러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각 듣기에는 소음 같기도 하고. 형신이가 음악이 진짜 어렵다고 하길래 내가 “야, 우리 같은 사람이 이런 거 들으면서 ‘어렵다’고 말하면 허세야. 이건 어려운 게 아니라 완전 노이즈 같은데.” 이 음악을 계속 접하다 보면 이 장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으려나.

요즘 음악의 해석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다. 작곡가가 직접 연주하고 지휘한다 하더라도 그게 정답은 아닐 것이다. 음악은 곧 경험이니까. One summer’s day는 내 favorite이지만 오늘 연주는 내가 생각하는 해석은 아니었다. 감정이 풍부하게 들어가는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과한 건 질색이다. 일례로 흔히들 잔잔한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할 때 감정을 집어넣기 위해 일정 부분을 늘여서 연주하곤 하는데 듣기 싫을 때가 많다. 전에 서양음악사 수업을 들을 때 김정진 교수님께서 박자를 파괴하면 안 되는 작곡가에 대해 이야기 하신 적이 있다. 누구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쇼팽이었던가. 듣기 거북한 다른 한 가지 경우는 피아노 연주의 RnB화인데 오른손 꾸밈음을 과하게 넣는 것이다. 그런데 히사이시 아저씨가 피아노 연주를 할 때 그런 경향을 보이는 것 같아서 좀 슬프다. 앨범에서는 그렇게 안 하는데 연주회에서 연주할 때 자주 그런다. 아무래도 피아노가 강약을 표현하는 데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서 연주자들이 그런 경향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에 송준화 교수님과 창의력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창의적인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흔히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예술을 즐기라고 하는데 이 말은 너무 추상적이지 않냐고 말씀드렸더니 교수님께서 공감하시면서 반면 창의력 훈련을 열심히 한 연구자는 예술을 즐길 줄 알게 된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가령 그림 작품을 보면서 이 화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기의 일에서 창의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예술작품에서도 창의의 가치를 즐길 수 없는 것이다. 어렸을 땐 작곡이라는 것이 그저 악상이 떠오르면 받아적으면 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연구라는 것도 아이디어가 논문이 되기까지 정밀한 실험을 거치고 정리하고 스토리를 만들고 논리적으로 글을 쓰고 문장을 하나하나 다듬기를 수십 번 반복하듯이 음악이 a work가 되기까지는 마디를 하나하나 다듬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것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음악은 그 음악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그 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 작곡가의 수고를 생각하면서 나와 동일시 하고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음악을 더 잘 즐기기 위해서는 그 음악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함께 알고 이해하는 게 좋겠다.

다시 음악의 해석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면 어떤 음악가의 해석이 내 맘에 안 든다고 거부하는 것이야 내 자유겠지만, 맘에 안 드는 해석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 보려고 노력할 때 배울 것이 있고 나를 새롭게 해주는 것이 있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해석대로 연주되는 것만 들으려고 하고 다른 해석은 즐길 줄 모르니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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