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3 – The first operation of God’s life: regeneration

This is the summary of John 3.

The first operation of God’s life: regeneration

The nine cases in the Gospel of John signify all human conditions. And this book shows how the life operates in each of the cases. The first operation in chapter 3 is regeneration: being reborn by water and the Spirit. Don’t think that this regeneration is needed for evil or weak people. See to whom the Lord talked about this matter of regeneration. It’s Nicodemus, a moral, good, humble, honest, high-class, intelligent, religious, God-seeking person. Even this good person needed to be regenerated.

The kingdom of God

Regeneration is a matter of life. To enter the kingdom of God is to participate in the kingdom and to be a member of the kingdom of God. For this we need to be regenerated, that is, to receive God’s life. The new life is the key to God’s kingdom. Think about the human kingdom and animal kingdom. They may live together at the same place, but they can’t be a member of each other’s kingdom because they have different kinds of life.

Life vs. knowledge

The opposite of life is knowledge. I don’t need to teach my dog how to bark, because he has the life of dog, and he already knows how to bark and he does bark himself. In the garden of Eden, what was the opposite of the tree of life? Was it a tree of death or evil? No, it was the tree of knowledge. Nicodemus was actually an essence of knowledge. He was a Pharisee, and he wanted teaching by calling Jesus a teacher. To Christians, what we need is not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We need life, God’s life, which has different nature from human life. Discipline is difficult. It may work, but it accompanies pain and it’s temporary. Once you get the new life, it doesn’t matter even if you do not know about the kingdom. The life will realize everything.

Brass serpent lifted up on the cross

Human beings are poisoned, no matter how good they look. When we behold Jesus on the cross, our poison goes away. This is equivalent to the principle of life, which is to change death into life. It is simple to receive the new life. Gaze upon the Lord, especially the Lord on the cross.

John 3 – The first operation of God’s life: regeneration

God’s Names

What is God’s name?

(Uhh?? Isn’t “God” His name?)

There are at least four different names of God (to my knowledge), two in the Old Testament and two in the New Testament.

Elohim

Meanings: God as Creator, Preserver, Transcendent, Mighty and Strong

Elohim is the name that occurs at the beginning of the Bible (Gen. 1:1). Elhim is a plural noun but used with singular verbs in the Tanakh. This implies the Triune God (God the Father, God the Son, and God the Spirit). Isn’t it wonderful?

God is transcendent and mighty. He is not powerless.

Jehovah

Meanings: I am who I am, self-existent one

God can be all that is positive. If I need something, He is the something. And He is self-existent, so He has existed since the eternity past and He will until the eternity future.

Jesus

Meaning: Jehovah the Savior

Jesus is the incarnated God. He is not only the son of God, but also God Himself who came to the earth in flesh. The Father, the Son, and the Spirit are distinct, but not separable. (Refer to Elohim.)

Emmanuel

Meaning: God with us

Matt. 1:23 “Behold, the virgin shall be with child and shall bear a son, and they shall call His name Emmanuel*” (which is translated, God with us).

cf. http://ldolphin.org/Names.html

God’s Names

Romans 3

유대인

유대인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다.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지만 하나님은 참되시다. “이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주님께서 의로우시다는 것이 나타날 것이고, 주님께서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실 것입니다.”(시 51:4) 따라서 유대인 중 몇몇이 믿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실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진실성이 흘러 넘치면 잘 된 건데 왜 내가 심판을 받아야 하느냐?”라고 하는 사람이 있음. 이 사람은 심판을 받아 마땅함.

헬라인

그렇다고 헬라인이 더 낫지도 않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도 없다. 모두 빗나가 함께 무익하게 되었다.”(시 14:1-3)

율법 vs. 은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로운 육체가 없고 죄를 분명히 알 뿐이기 때문에, 율법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함.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 모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구약 (율법) vs. 신약 (은혜)

그리스도 예수님은 화해장소이다. 화해장소란 원래 이전에 사람들이 지은 죄를 “잠시 덮어두고 지나쳐 가심으로” 오래 참으시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 이때에는 그분의 의를 나타내셔서 자신도 의로우시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의롭다 하신다. 죄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양을 잡아 피를 뿌려야했다. 이는 사람의 죄를 덮어두는 의미를 가졌다. 구약 시대의 양은 예수님의 예표였지만 죄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잠시 덮어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 참된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실제로 “죄를 없애실” 수 있다. 믿음으로 양을 잡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 살 수 있었던 구약처럼, 오늘날엔 예수님이 죄를 없애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 구약에는 율법이 주어져서 이 율법을 어기지 않으면 의롭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 율법을 어기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의롭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신약에 와서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 모두에게 미치는 의다. 따라서 바울은 이 서신에서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노력은 쓸모가 없고 오직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Romans 3

The Tree of Life

It is very interesting that when I talk with people about the Bible, they usually know (even though they are not christians) about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but don’t know about the tree of life. If I ask “do you know there was another tree beside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en most of the time people answer, “I don’t know… Was there?”

I usually bring up this story to give people some insight for God’s purpose on human beings. God wanted human to eat the tree of life, but they ate the other one, which God asked not to eat. The thing is people focus on the tree that Adam and Eve ate, but are not aware of the tree that they should have eaten. I’m not pretending I’m different from them. I would have been the same kind of person if I didn’t know the truth.

What a distraction! We should focus on the tree of life to see what God’s intention on human is.

Gen. 2:9 And out of the ground Jehovah God caused to grow every tree that is pleasant to the sight and good for food, as well as the tree of life in the middle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e Tree of Life

말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불러 말씀하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그 곳으로 떠났다.
아브라함이 있던 브엘세바와 모리아는 서울과 대전 정도의 거리이다.
그가 모리아 산으로 가면서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셋째 날에 모리아 산이 보였다.
번제 나무를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들고 가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이삭이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는 순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여호와의 사자가 급박하게 그를 불렀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있었다.
그가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창세기 22:1-18-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기 1:21-

말씀